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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있었는지 까맣게 잊고 살 정도로 정신 없이 살았다. 그 사이 첫째 아들은 5살, 둘째 딸은 2살이 됐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나는 여전히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 몇번이나 그만두려 했지만 목구녕이 포도청이라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금도 큰 도움이 안되는 팀에서 작은 직책을 맡아 그저그런 존재로 지내고 있다. 여전히 남의 재능을 끌어다 쓰면서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일은 늘 힘에 부치지만, 육아만 할까... 그래도 아이들이 웃어보일 때면 모든 고통과 힘겨움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4년이 될지 40년이 될지. 다시 블로그를 찾아 일상의 배설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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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쉼표 2019. 1. 1. 10:33

2019년 새해가 밝았다.

2018년은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2월에는 10년을 만난 짝과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국가가 인정하는 배우자가 됐다. 결혼식이 얼마나 힘든 것이 몸소 느꼈으며, 신랑 신부 행진을 외치던 L의 목소리가 왜 그렇게도 반가웠는지 모른다. 서울의 집 값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 느꼈고, 수도권 외곽에 얻은 전세집에 신혼살림을 채워가는 재미는 꽤 쏠쏠했다.

대구에 있는 친구들 모임에 가지 못해 제명 위기에 놓였지만, 20년 우정은 그렇게 쉽게 갈라지지는 않았다. 친구들에게 더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에는 고기 구워먹고 놀러다니던 재미를 한창 느끼는 신혼 초기인 5월에는 2세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됐고, 아이는 지금까지 짝의 뱃속에서 잘 자라고 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부모들도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혼 3개월 만에 생긴 우리 아기는 너무나 축복이다.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고, 사실 지금도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 실감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처음 초음파에서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고 눈시울을 붉혔던 그 감정이 아마 아이가 태어나면 더 커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유일무이했던 태교는 헌법 전문을 읽어준 것이다.

2018년 초에는 좋은 팀을 만난 덕분에 큰 상도 탈 수 있었다. 기자라는 직업을 계속하면서 다시 그런 상을 받을 수 있겠나 싶다. 정책뉴스부, 사회부만 전전하던 나는 9월에 부서를 옮겼으며, 지금은 기사보다는 다른 것이 더 중요한 일상을 살고 있다. 적성에 맞지 않구나를 매일매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의 제안으로 시작한 기획 연재 시리즈는 재미있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도 다녀왔다. 

다행히 부모님과 장인어른 장모님은 모두 건강하시다. 2019년에도 건강하셨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2018년은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해가 됐다. 2019년의 목표는 2가지다. 연말 건강검진에서 과체중, 과체지방으로 지적을 받았기 때문에 체중감량을 할 생각이다. 또 하나는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 자라고, 함께 2019년 마지막날을 보내는 것.

회사생활에 있어서 목표는 올해는 딱히 없을 것 같다. 이 부서를 벗어나게 되면, 예전과 다름없이 그저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쓰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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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일

쉼표 2018. 12. 26. 21:18

어느날 문득, 신생아 물품과 육아정보를 검색하다 버려진 블로그를 발견했다. 1년동안 아무런 활동이 없어 휴면계정이 됐단다. 이전 글들에서는 치기어린 혹은 치열했던 고민이 어설프게 문자화돼 있다.

블로그가 버려진 사이, 나는 평생을 함께 할 짝을 만났고, 또 1명의 가족 구성원의 탄생을 앞둔 사람이 됐다.

이제 65일, 너가 우리에게 오는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너의 탄생을 포함해 나는 인생의 많은 문턱을 넘으며 살겠지만,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어쩌면 다시 기록이라는 걸 할 것 같다. 

옮긴 부서의 일은 힘들지 않다. 어쩌면 기자의 일보다는 회사원의 일을 하고 있다. 이 부서를 거쳐간 한 동기가 "돈은 그만 벌고, 일을 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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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과 수첩 따위가 한때 저들의 연장이었으나 이제 랩톱 컴퓨터가 대신한다. 언제 어디서나 접속 가능한 무선 인터넷망은 편리했지만, 저들의 꿀맛 같은 휴식을 앗아 가곤 했다. 든든했던 온갖 핑곗거리는 더는 통하지 않았다. 멍 때리기는 사치스러웠다. 벤치에 앉아 한가로이 종이책을 읽는 건 미래의 상이었다. 기자회견의 주요 발언을 받아 치는 틈틈이 다음 일정을 확인하고 선배의 독촉 메시지에 즉각 답해야 했다. 타닥탁탁 모닥불 타는 소리 따라 손가락이 바빴다. 절절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뜨거워진 노트북 펼쳐 놓고 열정을 사른다. 주저앉으면 거기가 일터다. 유목민의 삶을 닮았다고 해서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요한 노동 행태 중 하나란다. 애초 삶의 질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속보 마감 독촉에 시달리는 저들은 디지털, 노땡큐라고 부를 법하다.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다. 이메일함에 담긴 보도자료엔 주장과 맥락과 근거가 충분히 담겼지만, 그 말투와 표정과 함성과 눈물 따위는 거기 없어 기자들은 컴퓨터 품고 현장엘 간다. 사연 많은 노동자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오늘 또 현수막이며 팻말 따위 ‘연장’을 챙겨 들고 땡볕 아래 선다. 세종대로와 국회대로 곳곳에 천막 치고 산다. 오랜 방식이다. 최신의 디지털 엘이디 조명을 갖고도 사람들은 종종 촛불을 켠다. 장밋빛 디지털 세상의 가시 돋친 풍경이다.

-매일노동뉴스 사진설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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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좋은문장

쉼표 2017. 3. 26. 23:49
나는 신이 두렵지 않아요. 사람이 무서워요.
세상에 사람보다 더 무서운게 있을까요.
숲속을 혼자 다녀도 무섭지 않아요. 땅은 물은 무섭지 않아요.

-체르노빌의 목소리,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레나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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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배설구 2017. 3. 23. 15:30

그날은 아마도 국정원장이 댓글 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좀 쉴 수 있겠네. 그런데 무슨 일이 또 빵 터지는 거 아냐"라는 농담을 한 내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수학여행 학생들이 탄 여객선이 제주로 향하던 중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학생들은 다행히 전원 구조됐습니다. 라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들려왔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면서 팀원들과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다 구조되서 참 다행이다"라는 말과 함께.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석간신문엔 "전원구조"라는 글씨가 대문짝만하게 1면에 실려있었다. 오보였다. 회사의 호출로 하던일을 중단하고 급하게 귀사했다.

함께 간 팀원 2명은 진도로 곧장 내려갔다. 내근 인력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회사 안에서 관련 기사를 서포트하고 사진설명을 쓰고, 그래픽을 만들었다.

두달간의 파견은 회사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다 끝났다. 진도와 안산으로 간 동료들과 선후배들은 괴로워했다. 매일매일이 전쟁같다고 했다. 괴롭다고 했다. 울었다고 했다. 취재를 포기하고 싶다고도 했다.

미수습자 9명.을 마지막으로 파견근무가 끝났고, 서초동으로 돌아왔다. 이후로도 다른 부서를 돌다가 2015년 12월에 경찰팀으로 왔다.

2016년 4월 16일에는 준비했던 세월호 관련 기사가 나가지 못했다. 2017년 1월 9일 촛불집회에 나가서 세월호의 의미를 물었다. 세월호는 기억이라고 했다. 예상보다 작은 기사로 나갔다. 그리고 2017년 3월 23일 세월호가 떠올랐다. 난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 어떤 기사를 써야 조금이라도 미안함을 구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는, 오늘도 앞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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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네거리에서 생중계를 보며 "그래도 아직 희망이 남아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역시 포용보다는 응징과 척결로 가야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그녀는 탄핵됐지만 불복했다. 심지어 웃으면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문제는 언론사 내부에도 그녀의 손짓에 가슴이 쿵쾅거렸을 이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박사모의 행동에 주시하고, 불복선언을 질타하는 기사거리에는 관심이 없다. 헌재 결정 불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그럴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있나보다.

차라리 머리에 똥만 든 무능력자가 낫다. 그렇게 지면의 사유화와 지면농단은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다시 내가 왜 회사를 다녀야 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이런 사람들은 그녀와 함께 탄핵되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뇌를 들어내서 해부해보고 싶다. 시발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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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쉼표 2017. 2. 13. 01:13
그는 새로 시작하기엔 늙었고, 죽기엔 아직 젊었다. 절망과 죽음 사이를 메우려는 듯 쉼없이 마셨다.
"언니는 그래도 남편이 있잖아. 나는 이제 기댈 곳이 노조 밖에 없어."
-송곳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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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머리 없는 머리를 짜내 그저 그렇지만은 않은 아이디어를 내고 생고생을 하며 취재를 했건만, 기사는 1개면에서 7장으로 줄었다. 한 사람의 정치적 편향성, 사안을 보는 편협한 관점, 아집이 크게 작용했다. 또 별로 개의치 않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분들의 그저그렇게 흘러가는 듯한 생각도 큰 역할을 했다. 결국은 작은 발악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공격적으로 발제하라고? 누구도 보도하지 않았던 팩트를 가져오라고? 부장은 끊임없이 킬해도 너희는 젊으니깐 그러면 안된다고? 지랄 염병이다.

그럼 그렇게 하면 제대로 실을 자신은 있고? 대구로 내려가고 싶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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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번의 4월 16일이 지났을 뿐입니다. 아들을 떠나 보내고 우리의 시간과 달력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안산 단원고 2학년 8반 고(故) 장준영군의 아버지 장훈씨)

 “우리는 구조된 게 아니다. 스스로 탈출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나. 그건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것.”(세월호 생존 단원고 학생 장예진씨)

 지난 7일 새해 첫 촛불집회에서 서울 광화문광장 무대에 오른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학생들의 발언에 집회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눈물을 훔치거나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사회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참사를 두고 “작년이냐 재작년이냐”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구속하라”, “퇴진하라”고 외치는 시민들도 있었다.

 9일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1000일째 되는 날이다. 국민들에게 세월호는 여전히 잊지 못하는, 잊지 않아야 할 일이 됐다. 서울신문은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아 지난 7일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 76명에게 세월호의 의미를 물어봤다. 인터뷰는 ‘세월호는 ㅇㅇㅇ이다’라고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시민들의 인터뷰를 분석한 결과, ‘잊지 않다’(33회), ‘기억’(15회), ‘우리’(14회), ‘참사’(12회), ‘국가·대한민국’(10회), ‘눈물’(9회), ‘진실·아픔’(8회), ‘민낯’(7회) 등의 단어가 주로 언급됐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억’이라는 단어는 절실함의 표현으로 해석된다”며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재홍 경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기 때문에 ‘국가’라는 단어는 좌절감이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일’이고, 아픈 기억이자 슬픈 현실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직장인 김정애(49·여)씨는 “세월호는 기억”이라면서 “잊지 않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을 보수 지지자라고 밝힌 이광웅(67)씨는 “손주보기 부끄러운 세상. 잊지말자 세월호”이라고 적으면서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생 한혜림(16·여)양은 세월호를 ‘그림자’라고 봤다. 한양은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고, 떨쳐낼 수 없는 그림자처럼 계속 따라온다”고 설명했다. 회사원 김동관(50)씨는 “우리 모두의 눈물이다”라고 적은 뒤 “슬프니까”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 외에도 “불쌍한 아이들 절대 못 잊는다”, “잊지않을 잊지못할 우리의 진실”, “언제 떠올려도 아픈 머리속 가시”, “자식잃은 아픈 자리”, “언니 오빠들의 희망을 앗아갔다”, “잊지 못할 우리의 일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등의 대답이 나왔다.

 국민들은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하거나 진상규명과 인양이 더디게 진행되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국가 시스템의 부재와 부패하고 부능한 권력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것이다. 직장인 김정교(50·여)씨는 “국가가 더 이상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을 알게 해준 국민의 눈물”이라고 했다. 대학원생 박찬종(31)씨는 “설령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도 국가 시스템에 의해 구조됐어야 할 아이들”이라면서 “국가 시스템의 부재가 만들어낸 잊지 않아야 할 참사”라고 적었다. 대학생 김지예(26·여)씨는 “세월호는 떠올라야 한다”라면서 “세월호의 진실이 다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적었다”고 말했다. 두 딸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이철환(44)씨는 “이제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 주세요”라고 적으면서 조속한 인양을 요구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변하지 않는 세상,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정치나 사회 이슈를 외면했던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아파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스케치북에 “우리의 침몰한 양심”이라고 적던 김건희(43)씨는 “너무나 아픈 기억”이라며 이유를 설명하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자영업자 김주영(55)씨는 세월호를 “어른들의 민낯”이라고 정의했다. 김씨는 “나와 같은 50대가 어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고 말했다. 주부 곽인정(31·여)씨는 “어른들의 눈물”이라고 적은 뒤 “아이들이 희생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던 무능한 어른들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설명했다. 직장인 김지연(40·여)씨도 “그날의 슬픔을 감당할 수 없다”며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부모들의 눈물”이라고 적어 내려갔다. 이 외에도 “양심의 소리”, “국가 실종의 상징”, “그날, 대한민국도 침몰했다”, “교통사고가 아니다”, “가라앉은 진실”, “대한민국의 부조리 그 자체”, “얼룩진 우리의 거울” 등의 대답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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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인 소방관 처우개선 관련 기사. 연말을 맞아 다시 아버님을 만났다. 간만에 심혈을 기울여 쓴 기사라 원본이 너무 아까워서. 여기에 라도 또 올리면서 스스로를 위로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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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곧 죽을텐데 아버지가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면 갈 수가 없잖아요.”

 항암치료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들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지만 차마 이 말을 아버지에게 직접할 수 없었다. 며느리를 통해 전해들은 이 말은 아직도 김정남(68)씨의 가슴 속에 응어리처럼 남아있다. 31살의 젊은 아들을 먼저 하늘로 보낸 아버지는 여전히 국가가 원망스럽고, 소방관이 되겠다던 아들을 말리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5개월 만에 다시 만난 정남씨는 인터뷰 내내 “아들 일로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5개월 전과 마찬가지로 정남씨는 인터뷰 중간중간 눈물을 훔쳤다. 정남씨의 아들인 고 김범석 소방관은 2014년 6월 숨을 거뒀다. 김 소방관은 2006년 소방공무원에 임용된 뒤 8년간 1021차례나 화재·구조 현장을 누볐다. 2013년 8월 훈련 중 고열 및 호흡곤란 증세를 갑자기 호소했고, 3개월 후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병 판정을 받았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정남씨는 아들이 남기고 간 미래일기를 다시 꺼내봤다고 했다. 김 소방관이 투병 생활 중에 ‘병이 낫는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써내려간 메모에는 2016년 12월 어느날의 모습이 기록돼 있다. “아들과 캠핑을 다녀왔다. 아픈 몸 때문에 하지 못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해 예전처럼 돌아가야겠다.”, “다음달 동계수난구조훈련 준비로 바쁘다. 대원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줘 구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죽기 전날 며느리를 붙잡고 “조금만 더 살고 싶다”고 했던 아들은 손자와 캠핑 한 번 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사놓은 캠핑장비는 집 한켠에 놓여있다. 그런 아들의 죽음을 인정해주지 않는 국가를 상대로 정남씨는 소송전을 벌여야만 했다. “병 걸린 아빠가 아닌 자랑스러운 소방관 아빠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아들의 유언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정남씨는 “당연히 소방관 일을 하다 얻은 질병으로 인정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올해 3월 재심의 요청마저 기각되자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법정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정남씨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본 해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보도<2016년 7월 5일자>로 아들의 사연이 알려진 후 여러 단체 등에서 ‘소송비에 보태고 싶다’며 도움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지만 가족들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으니 그 분들을 도와달라”는게 이유였다.

 올해는 왕복 6시간이 걸리는 부산과 서울을 유난히 자주 오갔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관련법 개정 논의가 일면서 정남씨는 각종 토론회나 공청회 등에 참여해 소송의 어려움, 현행법의 부당함 등을 설명했다. 정남씨는 “무조건 공무상 사망을 인정해달라는 식으로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다”며 “유가족에게 업무연관성 입증 책임을 미루고, 국가를 위해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소송까지 해야하는 현행법을 개선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소망을 묻자 “판결과는 상관없이 아들의 이름이 붙은 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이라며 “다른 소방관들의 처우가 개선되다면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 김범석 소방관법(위험직무 공무원의 순직 및 공상 인정에 관한 법률) 발의안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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