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머리 없는 머리를 짜내 그저 그렇지만은 않은 아이디어를 내고 생고생을 하며 취재를 했건만, 기사는 1개면에서 7장으로 줄었다. 한 사람의 정치적 편향성, 사안을 보는 편협한 관점, 아집이 크게 작용했다. 또 별로 개의치 않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분들의 그저그렇게 흘러가는 듯한 생각도 큰 역할을 했다. 결국은 작은 발악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공격적으로 발제하라고? 누구도 보도하지 않았던 팩트를 가져오라고? 부장은 끊임없이 킬해도 너희는 젊으니깐 그러면 안된다고? 지랄 염병이다.
그럼 그렇게 하면 제대로 실을 자신은 있고? 대구로 내려가고 싶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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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번의 4월 16일이 지났을 뿐입니다. 아들을 떠나 보내고 우리의 시간과 달력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안산 단원고 2학년 8반 고(故) 장준영군의 아버지 장훈씨)
“우리는 구조된 게 아니다. 스스로 탈출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나. 그건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것.”(세월호 생존 단원고 학생 장예진씨)
지난 7일 새해 첫 촛불집회에서 서울 광화문광장 무대에 오른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학생들의 발언에 집회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눈물을 훔치거나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사회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참사를 두고 “작년이냐 재작년이냐”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구속하라”, “퇴진하라”고 외치는 시민들도 있었다.
9일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1000일째 되는 날이다. 국민들에게 세월호는 여전히 잊지 못하는, 잊지 않아야 할 일이 됐다. 서울신문은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아 지난 7일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 76명에게 세월호의 의미를 물어봤다. 인터뷰는 ‘세월호는 ㅇㅇㅇ이다’라고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시민들의 인터뷰를 분석한 결과, ‘잊지 않다’(33회), ‘기억’(15회), ‘우리’(14회), ‘참사’(12회), ‘국가·대한민국’(10회), ‘눈물’(9회), ‘진실·아픔’(8회), ‘민낯’(7회) 등의 단어가 주로 언급됐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억’이라는 단어는 절실함의 표현으로 해석된다”며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재홍 경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기 때문에 ‘국가’라는 단어는 좌절감이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일’이고, 아픈 기억이자 슬픈 현실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직장인 김정애(49·여)씨는 “세월호는 기억”이라면서 “잊지 않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을 보수 지지자라고 밝힌 이광웅(67)씨는 “손주보기 부끄러운 세상. 잊지말자 세월호”이라고 적으면서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생 한혜림(16·여)양은 세월호를 ‘그림자’라고 봤다. 한양은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고, 떨쳐낼 수 없는 그림자처럼 계속 따라온다”고 설명했다. 회사원 김동관(50)씨는 “우리 모두의 눈물이다”라고 적은 뒤 “슬프니까”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 외에도 “불쌍한 아이들 절대 못 잊는다”, “잊지않을 잊지못할 우리의 진실”, “언제 떠올려도 아픈 머리속 가시”, “자식잃은 아픈 자리”, “언니 오빠들의 희망을 앗아갔다”, “잊지 못할 우리의 일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등의 대답이 나왔다.
국민들은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하거나 진상규명과 인양이 더디게 진행되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국가 시스템의 부재와 부패하고 부능한 권력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것이다. 직장인 김정교(50·여)씨는 “국가가 더 이상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을 알게 해준 국민의 눈물”이라고 했다. 대학원생 박찬종(31)씨는 “설령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도 국가 시스템에 의해 구조됐어야 할 아이들”이라면서 “국가 시스템의 부재가 만들어낸 잊지 않아야 할 참사”라고 적었다. 대학생 김지예(26·여)씨는 “세월호는 떠올라야 한다”라면서 “세월호의 진실이 다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적었다”고 말했다. 두 딸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이철환(44)씨는 “이제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 주세요”라고 적으면서 조속한 인양을 요구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변하지 않는 세상,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정치나 사회 이슈를 외면했던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아파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스케치북에 “우리의 침몰한 양심”이라고 적던 김건희(43)씨는 “너무나 아픈 기억”이라며 이유를 설명하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자영업자 김주영(55)씨는 세월호를 “어른들의 민낯”이라고 정의했다. 김씨는 “나와 같은 50대가 어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고 말했다. 주부 곽인정(31·여)씨는 “어른들의 눈물”이라고 적은 뒤 “아이들이 희생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던 무능한 어른들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설명했다. 직장인 김지연(40·여)씨도 “그날의 슬픔을 감당할 수 없다”며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부모들의 눈물”이라고 적어 내려갔다. 이 외에도 “양심의 소리”, “국가 실종의 상징”, “그날, 대한민국도 침몰했다”, “교통사고가 아니다”, “가라앉은 진실”, “대한민국의 부조리 그 자체”, “얼룩진 우리의 거울” 등의 대답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