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인 소방관 처우개선 관련 기사. 연말을 맞아 다시 아버님을 만났다. 간만에 심혈을 기울여 쓴 기사라 원본이 너무 아까워서. 여기에 라도 또 올리면서 스스로를 위로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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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곧 죽을텐데 아버지가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면 갈 수가 없잖아요.”

 항암치료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들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지만 차마 이 말을 아버지에게 직접할 수 없었다. 며느리를 통해 전해들은 이 말은 아직도 김정남(68)씨의 가슴 속에 응어리처럼 남아있다. 31살의 젊은 아들을 먼저 하늘로 보낸 아버지는 여전히 국가가 원망스럽고, 소방관이 되겠다던 아들을 말리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5개월 만에 다시 만난 정남씨는 인터뷰 내내 “아들 일로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5개월 전과 마찬가지로 정남씨는 인터뷰 중간중간 눈물을 훔쳤다. 정남씨의 아들인 고 김범석 소방관은 2014년 6월 숨을 거뒀다. 김 소방관은 2006년 소방공무원에 임용된 뒤 8년간 1021차례나 화재·구조 현장을 누볐다. 2013년 8월 훈련 중 고열 및 호흡곤란 증세를 갑자기 호소했고, 3개월 후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병 판정을 받았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정남씨는 아들이 남기고 간 미래일기를 다시 꺼내봤다고 했다. 김 소방관이 투병 생활 중에 ‘병이 낫는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써내려간 메모에는 2016년 12월 어느날의 모습이 기록돼 있다. “아들과 캠핑을 다녀왔다. 아픈 몸 때문에 하지 못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해 예전처럼 돌아가야겠다.”, “다음달 동계수난구조훈련 준비로 바쁘다. 대원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줘 구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죽기 전날 며느리를 붙잡고 “조금만 더 살고 싶다”고 했던 아들은 손자와 캠핑 한 번 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사놓은 캠핑장비는 집 한켠에 놓여있다. 그런 아들의 죽음을 인정해주지 않는 국가를 상대로 정남씨는 소송전을 벌여야만 했다. “병 걸린 아빠가 아닌 자랑스러운 소방관 아빠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아들의 유언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정남씨는 “당연히 소방관 일을 하다 얻은 질병으로 인정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올해 3월 재심의 요청마저 기각되자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법정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정남씨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본 해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보도<2016년 7월 5일자>로 아들의 사연이 알려진 후 여러 단체 등에서 ‘소송비에 보태고 싶다’며 도움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지만 가족들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으니 그 분들을 도와달라”는게 이유였다.

 올해는 왕복 6시간이 걸리는 부산과 서울을 유난히 자주 오갔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관련법 개정 논의가 일면서 정남씨는 각종 토론회나 공청회 등에 참여해 소송의 어려움, 현행법의 부당함 등을 설명했다. 정남씨는 “무조건 공무상 사망을 인정해달라는 식으로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다”며 “유가족에게 업무연관성 입증 책임을 미루고, 국가를 위해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소송까지 해야하는 현행법을 개선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소망을 묻자 “판결과는 상관없이 아들의 이름이 붙은 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이라며 “다른 소방관들의 처우가 개선되다면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 김범석 소방관법(위험직무 공무원의 순직 및 공상 인정에 관한 법률) 발의안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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